1970년대에는 한국 멜로드라마 중의 하위 장르인 호스티스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었다.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
<꽃순이를 아시나요>, <26X365=0>등이 이에 속한다.
호스티스 영화들은 시골에서 상경해 서울에서 육체적으로 타락하고 몰락해가는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들에서 여성의 육체는 전통과 현대, 서울과 지방, 집단과 개인이 갈등하고 모순을 겪다가
결국 파괴되는 공간으로서 등장한다.
이렇듯 호스티스 영화들은
획일적인 근대화에 의해 개인들이 소외되고 배제되는 사회현상에 관한 비판적인 역할을 의도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을 과잉된 섹슈얼리티를 가진 하나의 상품으로 재현한다는 혐의를 받곤 했었다.
호스티스 영화가 거듭 제작되면서 사회와 맺고 있는 비판적 긴장관계는 점차적으로 희석되었다.
비판적 기능을 상실한 호스티스 영화들은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의 3S 정책과 맞물리면서,
다만 여성의 육체를 상품화하는 저급한 ‘에로영화’로 전락했다.
1980년, 민주화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좌절시키면서 등장한 전두환 정권은
스크린, 섹스 그리고 스포츠를 교묘하고도 체계적으로 운영하여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대중을 우민화하였다.
우선, 1981년에는 5일간 16만평의 여의도 광장에서
만 3천명의 출연자와 천만여명의 관람객이 동원된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축제였던 ‘국풍81’을 통해서 대대적인 볼거리를 제공했으며,
올림픽 개최를 통해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기대심리를 자극하여 국민들의 눈과 귀를 현혹시켰다.
이듬해인 1982년에는 37년간 국민들의 시간에 대한 자율권을 억압했던
야간 통행금지도 해제시켰으며, 유흥업소의 심야영업 금지를 해제하고,
두발 및 교복 자유화를 발표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자유가 확대된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그 뿐만 아니라 지역적 감정을 결합한 프로야구를 출범함으로써,
대중들이 현실의 다양한 갈등과 모순을 잊게 만들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이름아래, 대중들의 권리와 자유는 억압당하고,
문화적 재현물 및 사상에 대한 검열을 더욱 강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혼한 여자의 외도를 다룬 <애마부인>(정인엽, 1982)은
제작진의 의도와 무관할지라도 3S 정책의 방향에 정확하게 부합했다.
이 영화는 이후 에로티시즘을 표방한 ‘부인 시리즈’의 원형이 되었으며, 1980년대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애마부인>은 개봉 첫날 전국에서 밀려드는 인파 때문에,
극장 유리창이 깨지는 등 열광적인 반응으로
넉달동안 장기 상연 끝에 31만 명이 넘는 관객동원 기록을 세웠다.
1982년에는 <애마부인>이외에도, 에로티시즘에 목적을 둔 멜로드라마가 꾸준히 만들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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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때문에 자신의 성적 욕구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여자가 등장하는 <여자와 비>(김성수),
출세욕 가득찬 남자의 비극적인 운명과 여자의 복수를 다룬 <사랑의 노예>(고영남),
정숙한 생각을 가진 여자의 남성편력을 다룬 <탄야>(노세한),
미모와 육체로 계급상승을 꿈꾸던 여자가 신데렐라가 되는 순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 <버려진 청춘>(정소영> 등이 그러하다.
이후 바람난 부인들과 <무릎과 무릎사이>(이장호, 1984)처럼 일탈에 매혹된 여성들,
그리고 성매매 여성을 다룬 <매춘>(유진선, 1988)처럼,
여성들의 성적 욕망을 기이한 욕구를 둔갑시켜 끊임없이 반복하고, 변형하였다.
이러한 에로영화들은 도시를 주된 배경으로 삼는 반면에,
토속물적인 소재와 결합한 <반노>(이영실), <산딸기>(김수형)와 같은 작품들도 제작되었다.
이러한 토속 에로영화들은 현대물보다 완성도 면에서 훨씬 능가하는 편이었지만,
소재면에서는 제한적이었다.
자손이 없는 양반 집안의 씨받이인 여성의 고난을 다루거나
혹은 가난 때문에 몸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여성들의 삶을 그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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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이두용, 1985), <땡볕>(하명중, 1984),
<화녀촌>(김기, 1985) 등이 후자에 속하는 영화들이라면,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이두용, 1983), <자녀목>(정진우, 1984),
<어우동>(이장호, 1985), <씨받이>(임권택, 1986),
<사노>(엄종선, 1987) 등이 전자에 속하는 영화들이다.
이러한 토속 에로영화들 가운데는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씨받이> 등처럼,
해외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에로티시즘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토속 에로영화들은
현대 에로영화보다 좀 더 점잖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1987년 이후, 그동안 억눌려왔던 대중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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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두환 정권은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는 6/29 선언을 내놓는 등
6월 항쟁의 성과치고는 아직은 미비했지만
사회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영화계 역시 새로운 지형변화가 일었다.
장선우/이명세/박광수 등과 같은 새로운 한국영화를 지향하는 신인감독들의 등장,
임권택/이장호/배창호 등 중견 감독들의 활약,
독립영화를 비롯한 새로운 장르 및 형태의 영화들의 등장 등
전반적으로 한국영화의 지형도가 변화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물결 속에서 저급한 싸구려 에로 영화들은
새로운 매체인 비디오와 결합되면서, 에로 비디오 영화로 그 시장과 관객을 옮겨갔다.
글쓴이: draman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