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영주 이름모를 이발소에서 긴 장발을 자르고
입영 대열에 함께했습니다.
군대에 나오는 국은 너무 싱거워 못 먹는다는 말에
그냥 조미료만 몰래 신발안에 넣고
나무 도장을 파서 그안에 만원짜리 하나를 넣고 집을 떠나왔습니다.
사복과 모든 물건은 집으로 보내야 하고
사제품이 발각시 엄한 기합을 준다는
입영 안내를 하는 군복입은 무서운 사람의 말씀에
지나가는 하사 한분에게
"아저씨 이 조미료 아저씨하세요" 하며 건네드렸고
그 하사님은 절 그 대열에서 빼내여 옆자리로 옮기게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하사님은
논산훈련소에서 훈련기간동안 함께하실
우리 내무반장이었습니다.
참으로 그분은 제게 잘 해주셨습니다.
제가 훈련기간동안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취침전 다리랑 팔을 주무려 드리는 것외에는 없었습니다.
단체 기합을 받을때도 절 제일 먼저 그만두게 하셨고
어려운 훈련때도 열외로 빼주시기도 하셨습니다.
항상 월요일이면 절 별도로 오라하여 집에서 갖고 오신
맛난 음식을 주시곤 하셨습니다.
전 그때 그분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어려울때 고마움을 주신 분은
결코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훈련이 끝나고 근무할 자대로 떠날 때
저에게 쪽지하나를 손에 지워주셨습니다.

짧은 기간 동생처럼 생각했노라고
앞으로도 그렇게 했음 무지 좋겠다고
그리고는 꼭 편지를 해달라며 주소를 적어 주셨습니다.
그날 앞으로 근무할 군대로 갔고
고달픈 군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열차에서 꼭 편지를 드려야 되겠다는
초심의 생각은 고달픈 졸병 생활로 인하여
까마득히 잊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일이 지나 그분이 생각났을 때
그분의 쪽지는 간곳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간사한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토록 어려울 땐 육체적,정신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에게
전 그 쉬운 편지 하나의 약속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날이후 전 메모의 습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명함을 받으면 명함함에 넣어 간직했고
꼭 수첩에 연락처를 적어 두었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망각하는 동물이지만
그러나 어느날 불현듯 생각나기도 하는 동물이라고 들었습니다.
빗님이 말없이 가슴에 와닿는 어느날밤
야간 전투 훈련에서 잠시 훈련중 저를 오라하여 건빵을 주시며
이곳에서 쉬라고 하신 그분이 생각납니다.
얼마나 절 원망하셨을까하는 그 분의 심정이 저의 맘을 아프게도 합니다.
가만히 창가를 두드리는 빗님을 보며 지난 날을 회상하노라면
수많은 그리운 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연락도 할 수 없는
같은 하늘아래 계시는 수많은 분들이 한없이 생각나는
빗님 오시는 날입니다
한번 먹은 마음 오래토록 변치 못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모양입니다.(*)



그 시절 면회오신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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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는 말아야지 /백영규
잊지는 말아야지 만날 수 없어도 잊지는 말아야지 헤어져 있어도 헤어질 땐 서러워도 만날 땐 반가운 것
나는 한마리 사랑의 새가 되어 꿈속에 젖어젖어 님 찾아가면 내 님은 나를 반겨 주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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